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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천평화병원 제 1회 문화공모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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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명 순천평화병원 등록일 2012.06.12 조회수 10463

순천평화병원

제1회 문화공모전 당선 글: 편지

 

제목: K에게

글쓴이: 박 정규(5병동)

 

병원 주변의 벚꽃이 눈부시게 하얀 장막을 펼치고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봄의 작은 축제를 보며 병상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병실 창밖의 벼들이 저렇게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구나 했더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추수가 끝나버렸군….

K, 지금 건강은 어떠한가? 친구가 뇌졸중으로 스러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네 그래도 서울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집에서도 치료를 잘해서 봄에 중국여행까지 다녀왔다니 얼마나 기쁜일인가? 그때도 큰 병원이 있었더라면 고생을 덜 하고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을 했네….

나는 지금은 순천평화병원에 입원해 있네. 순천시 대룡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청암대학에서 벌교쪽으로 조금가면 병원이 보이지. 금년 5월에 개원했는데 호남 최대의 뇌질환 재활 전문병원이라고 하네. 건평 3400평에 350병상, 지하1층, 지상4층의 건물인데 지하 재활센터에는 열전기치료실, 스포츠통증치료실, 감각통합치료실, 수치료실, 운동치료실 등이 있으며 여기에는 50여명의 치료사와 여러 종류의 운동치료기구가 있는데 그 규모가 대단하네. 또한, 작업치료실과 언어치료실이 갖추어져 있지. 지하 운동치료실이 중심 치료실인데 나는 여기서 복합적인 운동 치료를 받고있네. 그러나, 난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수많은 사연과 가슴 뭉클한 사연들 때문이라네. 늙은 아버지가 밀고 오는 휠체어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초점잃은 눈으로 처져버린 젊은 아들, 백발이 성성한 노인과 휠체어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그의 아내, 집보다 병원이 더 익숙한 젊은 아들에게 매달린 어머니, 돌봐줄 가족이라고는 할머니밖에 없는 청년. 여기 치료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을 전부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젊은 아내가 몸도 말도 부실한 남편을 안간힘을 다해 휠체어에서 내리고 또 앉히고 힘에 부칠텐데, 그래도 매일 보면 밝은 표정을 잃지않는 것을 볼 때면 인간관계나 가족 간의 아름다운 전통이 변질된 이 시대에 무심히 보이지 않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네….

이곳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다수가 뇌질환 환자들이지만 장애유형은 여러가지라서 그에 따른 치료를 받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증의 환자는 처음 기구 위에 뉘어서 세우는 치료부터 시작하여 치료사가 손으로 마비된 관절과 근육을 풀어주며 여러가지 치료를 하는데 몇 주 지나다보면 앉기도 힘들던 환자가 서툴지만 조금씩 걷게 되는것을 보고 신기하고 대견스러움을 느낀다네. 이런 모습을 보며 뇌질환 환자들의 재활치료는 참으로 절실하고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네. 또한, 눈에 뛰는 것은 이렇게 특별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병원의 의사, 간호사, 치료사들은 성실하고 친절하게 환자들을 치료하며, 모든 직원들이 따뜻하게 가족처럼 대하여 편안하게 병상생활을 하고 있네. 특히, 환자들이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고, 각종 세미나를 비롯, 공연과 연주회, 영화상영, 도서대여 등을 마련하여 질병으로 인한 심리 정서적인 안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어 병상생활에 즐거움을 얻고 있다네.

K, 내 인생에서 특이할만한 2008년도 이제 두 달 남았으니 사계절을 병원에서 다 보낸 것이라 해도 과연은 아니겠네.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밤을 머릿속에 뒤엉켜있는 상념들을 떨쳐내려고 잠 못 이룰 때가 많았지. 회환과 아쉬움으로만 남는 잊고싶고, 떠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회상들이 스치는 순간들이 많았지. 그 땐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왜 그렇게 했을까? 더 노력하지 못했을까? 더 배려하며 살 수도 있었는데, 이웃과 더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 것을 하는 씁쓸함이 날 더욱 초라하게 만들더군. 아내와 자식들한테는 이제부터라도 보다 성숙한 삶을 살기위해 지나온 인생을 성찰하며 후회를 덜 남기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보네.

이시간,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간혹 써 먹는 “김수영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네.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들이 다 꽃 봉오리인 것을~”. 병마 때문에 인생을 꽃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병원에 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인생의 황혼을 곱게 장식하지 못하는 노년들, 인생의 황금기 한 때를 주춤거리는 많은 중년들, 젊음을 활짝 펼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생기잃은 꽃 봉우리 청년들, 이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네. “하느님, 저 영혼들이 이곳 평화병원을 통하여 회생하는 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라구.

친구여!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게나.

 

병상의 고통 중에

그리운 친구 K를 생각하며

 

2008. 10 어느 날. 박 정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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